러브레터 / Love Letter (1995)

기본 정보
감독
이와이 슌지
작가
이와이 슌지
배우
나카야마 미호 (와타나베 히로코 / 후지이 이츠키)
도요카와 에츠시 (아키바 시게루)
사카이 미키 (후지이 이츠키 중학생 시절)
러닝타임
약 117분
제작국
일본
수상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주연상 (나카야마 미호)
블루리본상 여우주연상
아시아 및 국제 영화제에서 장기적 명성 확보
OST에 대하여
먼저 영화의 OST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Remedios가 작곡한 이 영화의 OST 앨범은 내가 영화만큼, 어쩌면 영화보다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겨울이 될 때마다 이 앨범을 통으로 재생하여 거리를 걷고는 한다.
영화를 대표하는 곡은 사운드트랙 중에서 ‘A Winter Story’ 이다.
감독이 첫사랑의 순수함이 묻어나게끔 당시 8살이었던 여자아이에게 연습시켜 연주한 곡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곡 중 하나가 ‘He Loves You So’이다.
남자 이츠키가 시험지 확인을 핑계로 같이 있으려고 여자 이츠키에게 자전거 페달로 빛을 만들게 시키는 장면에 나온다.
수록곡들이 영화에서 각각 나오는 장면을 제목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재미로 작용한다.
안타까운 사실
등장인물은 두 여인과 그 여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츠키가 주인공인 두 여인인데, 2024년 별세한 나카야마 미호가 1인 2역을 맡았다.
먼저 나카야마 미호에 대해 말하자면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 출신의 중견 배우이다.
1992년에 WANDS와 함께 부른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세상 누구보다 분명)’이라는 곡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유명하고 국내 밴드 ‘더 넛츠’도 리메이크를 했다.
나카야마 미호는 2024년 12월 6일 히트 쇼크로 추정되는 사인드로 별세했다.
'히트 쇼크'는 갑작스런 온도변화로 인해 혈압이 급상승/급하강해 혈관이 고장나면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오는 것을 말한다.
주로 겨울철 온천/욕조를 이용할 때 발생한다.
'욕조익사'의 경우 일본에서 연간 1.9만명이 사망한다.
영화 외에서 그녀의 활동을 추적해보면 까무잡잡한 피부에 앙칼지고 깜찍해보이는 이미지로도 보인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무척이나 하얀 피부와 섬섬옥수인 손이 부각되고 목소리 또한 무척이나 여성스럽다.
히로코라는 캐릭터의 예이다.
히로코는 캐릭터 자체가 아주 여성스럽고 조심스러운 캐릭터이다.
이츠키는 털털하고 덤벙거리는 상반되는 매력을 가진 캐릭터이다.
1인 2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인다.
전적으로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를 아주 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석
현재를 살아가는 두 명의 등장인물에 관하여
히로코는 비록 남편을 잃었지만 미래가 있다.
곁에 그녀와 새로운 시작을 함께할 이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만 머무는 모습을 보인다.
이츠키는 연애에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스타일이 아닌 듯하다.
그녀의 아버지는 폐렴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감기에 걸렸는데 병원에 안가려고 해서 엄마의 걱정을 산다.
자신의 마음도 몸도 잘 돌보지 않는 그녀는 덤벙거리는 사람이다.
편지에 관하여

히로코와 이츠키가 주고 받는 편지는 몇가지 특이한 속성을 띈다.
편지는 보낸이와 받는이에 대한 내용이 아닌, 죽은 타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히로코와 이츠키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죽은 이츠키에 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주고받는다.
그것 외에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필요도 못 느끼고, 목적성이 사라진다.
현재에 대한 내용이 아닌 과거를 담고 있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시간여행을 한다.
히로코는 이츠키가 들려주는 내용으로 알지 못했던 남편의 과거속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이츠키는 자신도 잊고 있던 과거속으로 죽은 이츠키와 어린 자신을 찾아나선다.
그들은 편지를 통해 서로에게 중요한 것을 얻는다.
자신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가장 필요했던 것이다.
히로코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어떤 필연적인 작업이 필요했다.
그 작업은 닳고 닳을때까지 남편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생각은 의문과 궁금증을 불러오고 자신도 몰랐던 남편의 과거와 연결된다.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편지를 통해 알게 되는 과거는 히로코가 남편을 잊기 위해 필요했다.
이츠키는 히로코에게는 남편 이츠키에 대한 과거를 아는 남편의 과거 그 자체이다.
그녀는 히로코에게 전해줄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도 몰랐던 마음에 대해 알게 된다.
장롱 밑의 퍼즐 조각처럼 구석에 넣어두었지만, 결국 꺼내서 완성해야할 자신의 마음이였던 것이다.
잠자리에 관하여

과거의 이츠키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산에서 내려오던 중 얼음 속에 갇힌 잠자리를 발견한다.
잠자리는 온도에 취약해서 겨울이 오면 날개가 바스라져버린다고 한다.
얼음 속의 잠자리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감독이 오피셜로 말한 바에 의하면, 잠자리는 오랜시간이 지나도 전해지지 못한 이츠키의 첫사랑에 대한 상징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그 잠자리는 다신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같다.
더 이상 만질수도 또는 살릴수도 없다. 어린 이츠키에게 아버지가 그러했다.
커버린 이츠키에게는 자신의 과거 속에 갇힌, 이미 죽어버린 이츠키가 그렇다.
다른 인물들에 관하여

히로코는 산을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더이상 올라가기를 거부한다.
과거를 보내주려지만 아직도 겁이 나는 것이다.
그 길을 시게루가 이끌지만 아직은 이츠키가 너무나도 그립다.
죽은 이츠키의 절친이었던 시게루도 고통스럽다.
이츠키를 그리워하며 히로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그는 히로코를 이끌어줄 힘을 지닌 남자다.
영화 속의 히로코와 이츠키는 결국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이다.
이츠키의 가족들도 그러하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기 싫던 할아버지는 어느순간 이사가는 것을 손쉽게 허락한다.
할아버지는 과거에 아팠던 아들을 병원에 업고 가다가 너무 늦어서 아들을 하늘로 보냈다.
그럼에도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아픈 이츠키를 병원에 무사히 데려간다고 다짐한다.
트라우마가 있음에도 손녀를 업고 가는 모습은 누구보다 강하고 자신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강한 인물은 주변 사람들을 함께 미래로 이끄는 힘이 있다.
엄마는 남편의 죽음에 얽힌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이츠키를 업고 간다는 것을 만류한다.
그러다가 결국 시아버지를 믿고 함께 나선다.
그녀 또한 미래로 나아가는 인물인 것이다.
히로코와 주고 받는 편지는 이츠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미래로 나아가게 한다.
가족들의 사랑과 헌신은 이츠키가 자신의 몸을 돌보게 한다.
남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건강도 중요하다.
‘푸른 산호초’에 대하여

시게루와 히로코는 이츠키가 죽은 산에 간다.
불아범이라고 불리는 이츠키의 친구는 등산객들에게 주의를 주며 산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게루와 히로코는 그 산장에 방문한다.
산장에서 불아범이 전골을 끓이는 동안 시게루와 히로코는 앉아서 이야기가 튼다.
히로코는 과거에 이츠키의 프로포즈 이야기를 한다.
이츠키가 반지까지 준비했지만 2시간동안 먼곳만 보며 아무말도 못했다고 한다.
결국 결혼해달라고 히로코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츠키는 그 정도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던 남자였던 것이다.
그 성격은 이츠키가 좋아하던 노래 ‘푸른 산호초’와 이어진다.
히로코는 시게루를 비롯한 이츠키의 주변 사람들이 모두 ‘푸른 산호초’를 부르는 것에 궁금증을 가졌었다.
그들이 그것을 자주 부르는 이유는 그 노래가 이츠키의 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츠키가 조난당했을 때 죽어가면서 푸른 산호초를 불렀다고 한다.
푸른 산호초의 코러스 가사는
"내 사랑은 남쪽의 바람을 타고 저 섬으로 간다”
이다.
남풍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부는 바람을 뜻한다.
이츠키는 어릴 적 살던 오타루에서 밑으로 전학갔다.
이츠키가 부르는 바람은 결국 북쪽의 누군가를 향한다.
남쪽의 이츠키(男)의 사랑은 바람을 타고 일본의 북단에 홋카이도 섬에 위치한 오타루의 이츠키(女)를 향해 가는 것이다.
이츠키(男)는 평소에 마츠다 세이코(푸른 산호초를 부른 가수)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죽기 직전에 이 노래를 불렀을만큼 계속 첫사랑인 이츠키(女)를 사랑해왔던 것이다.
히로코에겐 아쉬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랑은 공평하게 분배된다.
히로코는 시게루의 사랑을 받고 있고 앞으로 그와 함께 할 것이 암시된다.
이츠키는 전해지지 못했던 첫사랑의 마음을 전해받는다.
죽은 이츠키도 조금은 나아졌으려나.
평생을 사랑해왔고 그리워해왔지만,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죽은 후에서라도 전한다.
명장면에 대하여

아침에 일어나서 넓게 펼쳐진 설원 끝에 이츠키가 조난당한 설산이 보인다.
시게루는 먼저 죽은 이츠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외친다.
히로코를 책임진다고 외치고 좋다는 대답을 자신이 하며 분위기를 푼다.
히로코도 넘어졌을 때 외투도 벗어던지고 넓은 들판으로 달려나가 여러번 한참을 울며 외친다.
이것이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그런데 단순히 설원에서 소리치는 장면이 아닌, 히로코가 얽매여있던 과거를 털어내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핵심적인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이름에 대하여

할아버지는 이츠키가 태어났을 때 심은 나무에 이츠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무에 이름을 짓는 행위를 주목할만하다.
누군가의 이름을 따라 짓는 것은 그 사람을 그만큼 존경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잘 하지 않는 행위이다.
그만큼 이름에 대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는 언제나 의미가 담긴다.
누군가의 이름을 계속해서 혼자서 부르거나 심지어 글로 적는 행위도 그렇다.
그것은 그 사람을 그만큼 그리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행위이다.
이츠키는 수많은 도서카드에 자신과 같은 이름이자, 자신이 좋아하던 그 이름을 흔적처럼 남겼다.
이츠키는 그 이름의 수만큼 이츠키를 좋아했다.
영화의 구조에 관하여

이 영화는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일단 로맨스 영화인데 편지를 주고 받는 주체가 남자와 여자가 아닌, 죽은 남자에 대한 인연이 있는 두 여자이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사랑에 불이 붙거나, 사랑이 이어지는 영화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편지는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해서, 한 사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에 대한 과거를 조명한다.
히로코와 이츠키가 과거를 살펴보는 이유는 다르다.
이츠키는 안쪽에 꾹꾹 눌러놓은 자신도 모르던 감정과 추억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다.
또 그 안에서 그토록 자신을 사랑했던 이츠키에 대한 감정을 알게 된다.
그것은 죽은 후에라도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길 바랬을 이츠키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히로코는 그리움을 놓지못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쥐려는 것처럼 미련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お元気ですか? 私は元気です.(오겡끼데스까? 와타시와 겡키데스.)
라는 한국인에게 유명한 대사는 히로코가 여러번 말한다.
설원에서 뿐만이 아닌, 이츠키에게 부치는 편지에도 이 말을 넣는다.
오겡끼데스까(잘 지내세요?)와 와타시와 겡키데스(저는 잘 지내요)는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
죽은 이츠키가 잘 지내는 지 궁금한 것에서 시작한 여정이 히로코가 잘 지내게 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이츠키를 남자 이츠키는 찾아온다.
그리고 대신 반납해달라며 책을 하나 전해준다.
그 책이 정확히 뭔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학생들이 이츠키에게 전해주려고 가져온 책과 똑같은 표지를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그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감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아마 감명깊게 읽고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한 것 같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1913년에서 1927년까지 집필했다.
프랑스 문학사 뿐만이 아닌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로 평가 받는다.
나도 전집을 샀지만 1권부터 50p가량 읽고 몇년째 유기했다.
개인적으로 소설만 250권 가량 읽었지만 유일하게 읽기를 중단한 책일 정도로 어려운 책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권부터 7권까지 있으며 7권의 부제는 ‘되찾은 시간’이다.
히로코는 사랑을 내려놓는 사람에서 전해주는 사람이 된다.
그로 인해 이츠키는 사랑과 추억을 되찾은 사람이 된다.
영화의 시작과 반대가 되는 것이다.
영화 전개는 이츠키가 히로코의 사랑을 전해주는 듯 하지만 결국엔 히로코가 이츠키에게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준다.
소설은 마들렌을 한 입 베어먹은 화자가 그 향기로 어릴적에 마들렌을 먹었을 당시의 향기를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어린시절부터 화자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영화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여러가지 감각적인 경험들이 기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찾아내게 하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복선 거두기와 감성의 마술사

영화의 대단한 장점은 복선와 의미를 많이 흩뿌려놓은 것이다.
이 모든 장치는 관괙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기 위한 마술에 가깝다.
말하지 않은 사랑을 끝내 느끼게 만드는 것.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그 조용한 마술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랑은 거창하지 않다.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 대신 남겨진 한 장의 그림, 그리고 그제야 이해되는 감정.
모든 복선이 거둬진 뒤 남는 것은, 한 사람이 평생 품고 간 첫사랑의 온기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