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2-1
간략한 일정
이번 여행 일정은 이렇다.
뉴델리 -> 사르나트 -> 바라나시 -> 아그라 -> 자이푸르 -> 뉴델리
오늘은 사르나트로 이동하는 날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많이 참고했다.
하지만 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모든 곳을 가보려면 한달을 다녀도 부족할 것이다.
결국 선택과 단순화가 필요했다.
모든 곳을 가보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무리였다.
그렇다면 반드시 가야할 곳을 추린 후에 가지치기를 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북인도 중심의 루트가 완성됐다.
인도는 워낙 국토가 넓어서 이동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북부를 여행하고 중부나 남부까지 내려가기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북부만 둘러보기로 결정했고, 인도의 핵심적인 면모를 보기엔 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더 다니는 것은 욕심이고, 내 체력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각 도시를 선택한 이유는 이것들이다.
뉴델리: 인도의 근현대사를 품은 수도이자, 쿠툽 미나르와 후마윤 묘 같은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곳
사르나트: 석가모니가 실제로 처음 설법을 전한 곳으로,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
바라나시: 갠지스강을 볼 수 있는 흰두교의 성지
아그라: 인도의 랜드마크인 타지마할이 있는, 무굴제국 시기의 수도
자이푸르: ‘핑크 시티’로 불리는 도시이자 암베르 포트를 품은 라자스탄주의 주도
아침 풍경

오늘은 6시 50분에 기상했다.
여행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이른 기상이다.
기상 때만큼은 놀러와서 출근하는 느낌이랄까.
샤워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하니 어느새 7시30분.
루프탑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여전히 스모그에 찌들었지만, 그래도 아침의 특유의 상쾌함이 조금 느껴졌다.

루프탑에서 보니 꼬맹이들이 학교로 향하는게 보였다.
초딩때부터 부지런히 학교가는 건 세계 어디나 다 비슷한 모양이다.
숙소를 나오니 학교가는 아이들이 더 많이 보였는데, 순수함이 묻어나와서 귀엽고 정감갔다.

우버를 기다리며 마을 풍경을 찍어보았다.
벽이 없거나 창문이 없는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미완성 상태로 둔 건가 싶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애초에 그렇게 의도적으로 저렇게 지어진 건물도 많은 듯했다.
우버는 부르자마자 3분만에 도착했다.
가는데 얼마나 경적을 빵빵거리는지 알아보기 위해 10초짜리 동영상을 찍어보았다.
초에 한번 울리겠거니 했는데, 여러군데에서 울리니 체감상 초당 4-5번은 울려졌을 것이다.
바라나시로
30분정도 달려서 8시 30분에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결제를 하려는데 앱에 카드 등록을 못해서, 또 현금으로 계산해야만 했다.
내게는 20루피짜리 지폐 두 장과 100루피짜리 네 장이 있었는데, 요금은 313루피였다. 결국 320루피를 낼 수밖에 없었다.
기사가 거스름돈을 줄지 지켜봤지만, 또 어물쩡거리며 지갑에 잔돈이 없는 척하고 힌두어만 계속 쏟아냈다.
7루피가 한국 돈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시간도 아까워 그냥 팁으로 넘겨버렸다.
트래블월렛 카드를 우버에 등록해야 하는데, 우버가 카드 등록을 자꾸 막는다.
공항 직원들은 전부 군복 차림이었다.
짐 검사부터 게이트까지 가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먼저 마실 물부터 찾아다니다가 코스타커피에서 물과 커피를 샀다.
인도에서는 사서 마시는 물조차 조심해야 한다.
청결하지 않은 물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물만 골라 마셔야 한다는 점이 꽤 피곤하다.
전날에는 물을 사는 걸 깜빡해서 아예 한 모금도 못 마신 채 잠들었다.
준비해둔 말라리아 약도 물이 없어 못 먹었는데, 드디어 먹을 수 있었다.
기회를 봐서 깨끗한 곳에서 볼일도 봤다.
인도의 화장실은 의외로 꽤 깨끗한 편이었다.
청소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람들이 나가기를 주시하고 있다가, 거의 1분마다 한 번씩 들어와 닦았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청소하는 이유가 뭘까 싶을 정도였다.
공항이라는 특수한 시설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적어도 공항에서는 무조건 화장실을 들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행기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어떤 젊은 인도 남성이 어디서 왔냐고 말을 걸었고, “나이스 투 밋 유”라며 인사를 건넸다.
인도에는 이렇게 유쾌하고 친화력 좋은 사람들도 정말 많다.
한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여태 본 동양인은 일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 안에도 혼자 여행 온 듯한 왜소한 일본 남성이 있었고, 친구끼리 온 일본 여성들도 두 팀이나 보였다.
바라나시 공항까지는 원래 1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었다.
11시에 이륙해 12시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는데, 12시에 출발하는 바람에 도착도 한 시간 늦어지게 됐다.
샤워용품을 담아둔 작은 가방에서는 샴푸가 터져 있었다.
좌석에 비치된 구토봉투 지퍼백으로 가방을 감싸 큰 가방에 넣어두긴 했지만, 언제 새어나올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그날은 슬리핑버스를 타야 해서 샤워도, 빨래도 못 하는 일정이었기에 가방 전체가 샴푸로 젖어버리면 말그대로 X되는 상황이었다.
이 날 가장 걱정되던 건 12Go에서 예약한 버스를 제대로 탈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예약한 버스들은 탑승 애매하거나, 위치가 자주 바뀌고, 연락도 잘 안 되고, 연착도 잦다는 후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거의 지독한 혹평 수준이었지만 선택지가 없어서 이곳에서 예약할 수 밖에 없었다.
바라나시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긴팔을 벗고 긴바지도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터져서 새어나온 샤워용품 파우치를 닦아내고, 기내에서 챙겨온 지퍼백에 새어 나온 용품들을 따로 분리해 담았다.
1시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버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공항 주차비를 걷는다며 기사가 50루피를 달라고 했다.
자기는 돈이 없다며 계속 내게 부담시키려 했지만, 나는 현금이 없다고 버텼다. 실제로 50루피짜리 지폐가 없기도 했다.
우버비로 내가 줄 돈이 650불이 예정되어있는데, 어차피 이 인간이 50루피 때문에 650루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자기가 알아서 주차비 걷는 인간이랑 쇼부보고 나왔다.
아마 이런식으로 둘이 짜고 쳐서 관광객들 등쳐먹는 짓을 수십번 했을 듯하다.
구걸하는 아이

택시가 정차해 있을 때부터 눈이 똘망한,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 아이는 내 팔을 툭툭 치며 손을 내밀고 곧바로 구걸하기 시작했다.
슬픈 표정을 짓다가도 금세 해맑게 웃었고, 계속 내 곁을 따라다녔다.
입장권은 QR로 결제해야 했는데 인터넷이 잘 터지지 않았다.
어찌어찌 결제창까지 넘어갔지만 결국 결제 실패가 떴다.
온라인 결제는 270루피 정도였고, 현장 현금 구매는 300루피였다.
귀찮아서 그냥 300루피를 내고 현장 구매를 해버렸다.
유적지 입구로 들어서자 그제야 아이는 떨어져 나갔다.
눈을 마주치고 웃고 장난을 쳐도 떨어지지 않던 아이가, 유적지 안으로는 더 따라오지 못하자 결국 포기한 것이다.
대략 10분에서 15분 정도는 계속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구걸하는 아이에게 쉽게 돈을 줘버리면, 그 아이는 앞으로도 구걸에 기대어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
관광객의 동정심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가는 구조가 아무리 어린아이에게도 좋은 방식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다.
녹야원 입장

유적군에 들어서자마자 가이드가 필요하냐며 한 사람이 따라붙었다.
나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노 프라블럼”이라며 예의 있게 물러났다.
이렇게 정중한 가이드들도 있다.
아소카 석주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큰 나무 아래에 승려 두 명이 앉아 있었고, 흰 사제복 같은 옷을 입은 인도인 여러명이 그 앞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가니 한국 국기를 든 중년 여행객들도 보였다.
한국 여행객들은 여기서 처음 봤다.


지금 보이는 이 그림은 아소카 석주이다.
이것은 기원전 3세기, 아소카 대제가 세운 석주이다.
인도 전역에 약 30개 이상 세워졌으며, 불교 확산과 통치 이념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르나트의 석주는 특히 중요한데, 그 이유는 석가모니가 첫 설법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원래 석주 꼭대기에는 사자 4마리 조각(사르나트 사자상)이 있엇다.
이 사자상은 현재 인도 국장(국가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마우리아 제국과 아소카 대왕에 대해 조금 더 정보를 펼쳐야겠다.
마우리아 제국은 기원전 322년경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건국한 제국이다.
건국할 당시에 북인도에는 동쪽에 난다 제국이 패자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에는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군대가 정복활동을 하고 있었다.
오랜 정복 원정으로 알렉산더는 돌아가고 찬드라굽다는 난다 제국을 파괴하고 인도를 통일한다.
인도 역사에서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제국으로, 중국 역사에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 마우리아 제국에서도 최전성기를 다스린 왕이 아소카 대제이다.
아소카 대제는 찬드라굽타의 손자로 마우리아 제국의 3대 왕이다.
그는 잔인하기로 유명했다.
왕위 계승 다툼에서 친동생을 제외한 이복동생을 99명 죽이고, 그들을 따르던 신하와 궁녀까지 모두 죽였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데 도움을 준 이들마저도 충성심을 시험한다며 수백명 죽였다고 한다.
한번은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의 꽃을 딴 여인에게 500대의 채찍형을 가했다고 한다.
또 ‘아소카의 지옥’ 이라는 고문용 궁전을 만들어 포로들을 고문하기도 했다.
그런 아소카가 바뀐 계기는 재위 8년, 칼링가 왕국 침공 때이다.
이 전쟁에서 10만명이 죽고, 15만명이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전투 후에 참상은 피가 발목까지 들어서고, 아이들이 고아가 되거나 미쳐버렸다고 한다.
그는 그제서야 충격을 받고, 죄책감으로 인해 불교로 개종한다.
참 빨리도 참회했다, 진즉에 그러지 말지…
하여튼 그가 불교로 개종한 이후 한 일들은 긍정적인 일들이다.
전쟁을 그만두고 공공사업을 후원하고, 병원, 고아원, 양로원을 세워 사람들을 치료하고 돌보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동물 보호 정책, 동물 살해 제한, 동물을 위한 의료까지 제공했다고 한다.
불탑을 세우고 승려들을 이웃 나라에 보내 선교를 시키기도 했다.
불교 뿐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포용적이었다.

워낙 역사가 깊은 곳이라서 그런지,나무들도 세월을 함께 먹은 듯 큼직하고 울창했다.
다메크 스투파

유적군은 워낙 오래된 만큼 무너져내리고 터만 남은 곳이 많아서, 한눈에 보기엔 조금 허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국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다메크 스투파였다.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고, 실제로 마주하니 제법 웅장했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볼 만했고, 묵직한 존재감이 있었다.
뒤편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그곳에 모여 쉬거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부처가 가르침을 설했다는 실제 장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기대했던 종류의 영험함이나 분위기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감정을 꼭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고, 그런 기준을 내려놓고 보면 충분히 괜찮은 장소였다.
요가 체험? 명상 체험?

한편으로는 여러 색의 옷을 입은 외국인들이 모여 명상을 배우고 있었고, 혼자 조용히 명상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사방에 스모그가 자욱해, 기대했던 낭만적인 분위기는 솔직히 크지 않았다.
저들은 아마 바라나시에 며칠 머무르며 이런 프로그램까지 경험하는 여행자들일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저런 체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확실히 기억에 남을만한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곳을 둘러보며 느낀 점이 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를 두고도, 인도는 관리 부족으로 그 가치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이라는 것도 결국 현재의 관리와 보존이 뒷받침되어야 유지된다.
바빌론이나 아시리아처럼 인류사에 남을 유적들 중에는,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의해 파괴되어 사라진 것들도 있다.
설령 위험을 감수하고 그 장소에 간다고 해도, 사람들이 상상하던 감정과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실제 장소에 가보는 것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배우는 것과 분명 다르다.
과거의 숨결을 느끼고, 시간이 흐르며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직접 보는 경험은 오래 남는다.
그래서 그런 장소들이 관리 부족이나 현실적 문제로 그 매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더 아쉽다.
역사를 좋아하고, 직접 체험하는 여행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안타깝지만...

아까 구걸하던 아이는 양반이었다.
이번에 구걸하러 온 애는, 자는지, 죽었는지 분간이 안되는 어린아이를 안고 있길래 깜짝 놀랐다.
안겨있는 아이를 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과격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애가 죽은 것만 같았다.
코에 손을 대보니 그건 아니었다.
정말 많이 놀랐다.
사실 인도에 오기 전에 미리 구걸하는 아이들에 대해 글을 보고 검색해보기도 했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도 가지 않고 구걸하며 생활한다고 한다.
그게 당장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그렇게 하라며 길거리로 들이미는 경우도 실제로 있다.
그래서 NGO 같은 구호단체가 손을 내밀어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구걸을 한다고 한다.
가족뿐만이 아니라, 불량배들이 시켜서 구걸을 하는 경우가 많고, 번 돈은 대부분 불량배들이 수금해간다는 말도 있었다.
무엇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어도, 돈을 그대로 주는 것은 악습의 고리를 끊기는 커녕,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동정심으로 간단히 풀릴 문제가 아니었다.
충격이 크고 마음이 약해져서 쉽사리 발을 떼기 쉽지 않지만, 고개를 돌리고 그대로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영불탑이라는 곳도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않고 밖에서만 구경했다.
바라나시 거리

영불탑에서 탄 택시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목적지는 판치강가 가트였지만, 갈수록 차량이 몰려 길이 완전히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불만을 표했고, 나는 일단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걷는 것이 더 빠르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목적지까지 약 10분 정도를 남겨둔 지점에서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운전기사는 자기가 미안한 입장이긴 하다. 목적지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돈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기사는 비교적 정직한 편이었는지, 잔돈도 어느 정도 돌려주었다.
8루피정도 차이나긴 했지만, 그걸 따질 시간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금액이었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바로 걸음을 재촉했다.
인도 거리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걸어보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런데 몇분 걷지도 않았는데 바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거리의 시선들이 다 나를 향했기 때문이다.
마치 외계인이 뚝 떨어진 듯 동시에 보기 시작해서 그 눈길은 한쉬도 쉬질 않았다.
또 뒤에서 오는 릭샤들은 다 나를 향해 빵빵거렸다.
중간에 지나가며 나를 툭 치는 인간도 있었는데, 너무 불쾌해서 한 대 칠뻔했다.
걷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뒤에서 나는 경적 소리는 여러대가 동시에, 그것도 끊임없이 울려댔다.
하늘은 스모그로 인해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피부가 완전 썩어 문드러져버릴까 걱정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거리는 여태 가본 어떤 곳보다도 낯설고 불쾌했다.
특히 힌디어가 꼬불꼬불한게 외계에 온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도로 질서고 뭐고 다 개판이었다.
행렬

어느 곳을 가던 이곳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해보곤 한다.
그냥 간단하고 솔직히 말하면, 인도에서 태어난다면 살아가는게 너무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인도에 와서 거리를 걸어본지 수십분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섰는데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좁은 길에서도 오토바이들이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지나갔다.
그들에겐 경고의 의미나, 시비의 의미나,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는 않다.
그냥 일단 울리고 본다는 식이다.

어느순간 긴줄이 내 앞을 막아섰다.
구글지도를 보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내가 향하고 있는 판치강가가트로 향하는 경로로 줄이 늘어서있었다.
줄이 어찌나 긴지 앞으로 사람들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끝도 없었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두 손에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 꽃과 물감 같은 것이 얹혀있었다.
얼핏 봐도 강가에서 열리는 축제나 의식을 참여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걷다가 어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말을 걸고 어디가냐고 물었다.
판치강가가트를 간다고 하며 지도를 보여주니, 한 남자가 다짜고짜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그런데 구글지도에 나와있는 루트랑 방향이 달라서, 몇걸음 따라가다가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무말 없이 돌아섰다.
남자가 그제서야 따라와서 “뽀트! 뽀트!” 하고 외쳤다.
강가에서 보트타는 것 영업하려고 나를 데려가려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냥 무시하고 가다가 무리의 한 남자가 붙잡으려고 하자, 팔 내팽개치고 걍 무대뽀로 갈 길 갔다.
인도인 중 악질적인 사람은 아직 만난 적 없지만, 몇몇은 악질적이기보단 사람을 꽤 피곤하게 만드는 쪽이다.
갠지스강으로

갠지스강으로 향하는 길은 골목마다 이렇게 강에 관련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여기 골목이 매우 많고 복잡해서 구글지도를 켜고 걸어도 헤매기 쉬운 구조이다.
차라리 그냥 고개를 들고 그림들을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갠지스강을 만날 수 있다.

골목을 지나며 다시 한 번 인도에서 소가 어떤 존재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힌두교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동물인 만큼, 길을 걷다 마주쳐도 특별히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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